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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의 군인권센터의 추가 브리핑이다.

 

 

 

 

 

[ 출처 - 군인권센터 ]

 

최근에 군인권센터는 본 사건의 중요한 목격자인 김모 일병을 만나서 새로운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김모 일병은 윤 일병이 의무대로 배치 받아오기 이전부터 의무대에 입원한 입실환자로서, 폭행과정을 생생히 목격했으며, 사건 당일 윤 일병의 사망 전 과정을 지켜 본 병사입니다. 또한 김모 일병은 유가족들이 그토록 만나기를 고대했던 병사입니다. 하지만 군 당국은 김모 일병 아버지가 아들의 건강을 이유로 법적 증언을 완강히 거부해서 증인신문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본 센터는 유가족과 법률대리인들과 함께 어렵게 김모 일병과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안전을 위해 법정에서 증언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설득해서 증언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김모 일병과 김모 일병 가족은,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전화를 받아주었고, 사건초기부터 유가족과 만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가족과 군인권센터, 피해자 법률대리인이 김모 일병과 그 가족들을 만나서 사망 전 과정과 군 당국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브리핑은 김모 일병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 당일 잃어버린 의혹의 40분을 재구성하고, 군 당국의 증인과 관련한 은폐행위를 낱낱이 밝히고자 합니다.

 

1. 헌병대와 검찰관을 비롯한 군 당국은 유가족과 김모 일병의 만남을 방해하고 사실을 은폐, 왜곡했습니다.


김모 일병은 28사단 병영생활상담관에게 전화해서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고 유가족들과 어떻게 만날 수 없냐고 했지만 상담관은 유족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김모 일병은 윤 일병을 생전에 도와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유가족들을 만나 돕고 싶어 했습니다. 의무대에 입실해 있어서 김모 일병이 직접 연락을 할 수 없었을 때는, 김모 일병 아버지가 “유가족들과 만난 적이 있냐, 연락이 없다”는 얘기를 부대에 여러 차례 했습니다.

 

하지만 헌병대는 물론이고 검찰관, 사단장 등 군 당국의 어느 누구도 김모 일병과 유가족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윤 일병 가족은 김모 일병의 존재를 안 이후로는 줄곧 김모 일병을 만나게 해달라고 최승호 검찰관을 비롯한 군 당국에 애원했지만 김모 일병이 원하지 않는다며 만나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가족을 비롯해 군인권센터가 직접 만나 본 김모 일병과 그 가족들은 국방부의 언론 보도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사건 초기부터 김모 일병은 유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군 당국에 표명했다고 합니다. 김모 일병 아버지는 “열 번이라도 만나야죠. 만나서 얘기를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식이 심해도 얘기는 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5월 23일 1차 공판에서 28사단보통검찰부 최승호 검찰관은 김모 일병과 윤모 상병(주범 이모 병장의 휴가기간 동안 엠블란스 운전병으로 파견 나옴)을 증인신청했습니다. 그럼에도  6월 27일 2차 공판을 진행할 당시 김모 일병의 증인불출석에 대한 공식적인 확인 과정을 갖지 않았습니다. 불출석에 대한 검찰관의 설명이나 확인이 없으면 군판사들이나 심판관이 확인해야 함에도 약속이나 한 듯이 그 과정을 생략했습니다.

 

6월 12일 군검찰부는 김모 일병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김모 일병의 아버지는 공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김모 일병의 건강 이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지금은 증인 출석이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군검찰관은 증인신문과 관련된 어떤 요청도, 일체의 연락도 하지 않고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이것은 28사단보통군사법원과 보통검찰부가 실제로는 김모 일병을 증인신문할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8월 13일 사건을 맡은 3군사령부검찰부 검찰관을 포함 세 명의 간부가 김모 일병을 찾아와서 5시간에 걸친 수사를 하고 갔습니다. 방문조사를 하기 전 김모 일병의 집으로 전화가 왔을 때 김모 일병 아버지는 내려올 때 윤 일병 가족들도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3군 사령부 측은 김모 일병에게는 수사방향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유족들에게는 언급도,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보건대, 3군사령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여러 차례 유족들과 연결을 시도했지만 군 당국의 비협조로 되지 않자 김모 일병 아버지는 군인권센터를 한 번 찾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참이었다고 합니다. 중요 목격자인 김모 일병과 윤 일병 유가족들의 만남은 왜 이루어지지 못했던 걸까요?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밝혀내야 합니다.


8월 11일 국방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김 일병은 천식 때문에 조기 전역해 (지금은) 민간인 신분"이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진술해 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는데 부모가 그럴 필요 없다고 거절해 현재 진술받기가 쉽지 않다"는 허위 발표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김모 일병과 그 가족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야 했습니다. 온갖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신상털이까지 당해서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직  쇠약한 몸으로 친척집을  돌아다니는  불편하고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김모 일병 아버지는 아들의 개명과 성형수술까지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사건 이후 김모 일병은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윤 일병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군 당국의 은폐,조작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군 당국은 이 부분 왜곡과 은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2. 사망 당일 의혹의 40분은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전 과정이었습니다.


김모 일병에 따르면, 전날인 4월 5일 밤부터 윤 일병의 행동이 느리고 말을 잘 못하는 정도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밤에 너무 시끄러워서 깨 보니 주범인 이모 병장이 윤 일병을 발로 차고 폭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김모 일병이 제지를 했지만 이모 병장의 폭행은 계속 되었고 윤 일병은 평소보다 숨을 심하게 몰아쉬었습니다. 이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에 허리통증으로 파스를 받으러 의무대에 간 병사의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병사의 말에 의하면 이미 오전에 윤 일병은 숨도 올바르게 쉬지 못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고 합니다. 숨을 심하게 몰아쉬는 현상은 과호흡증후군으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당시 윤 일병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구타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역할까지 바꿨습니다.
4월 6일 김모 일병이 새벽 5시경 일어나보니 윤 일병은 정좌로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7시쯤 일어난 이모 병장은 자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잤냐며 윤 일병의 하루를 또 다시 폭행으로 열었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 가해자들은 의무대에 윤 일병과 김모 일병만 남겨두고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김모 일병의 말에 따르면, 2주 대기가 끝난 3월 이후로 윤 일병은 아침을 거의 못 먹었다고 합니다. 이모 병장이 응급대기라는 명목으로 윤 일병을 식당에 안 보내고 의무대에 남아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윤 일병은 162cm의 키에 50kg으로 체격이 작았지만 유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잘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생활관의 병사들과 나눠먹으라고 음식을 넉넉히 부대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음식은 윤 일병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모 병장이 중간에  가로 챘습니다(김모 일병 진술). 집에서 보낸 음식은 물론이고 부대에서 식사조차 변변히 하지 못한 윤 일병이었습니다.


사실 윤 일병의 역할은 5대기조였습니다. 의무대에는 5대기조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연대 하의 대대 행정실에 상주하면서 치료를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5대기조는 다른 부대에 나가 있어야 하기에 힘이 들어 가장 계급이 낮은 병사가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모 병장은 윤 일병을 보내지 않고 이모 일병을 보내고 윤 일병에게 응급대기를 시켜서 식사를 못하게 했습니다. 주범 이모 병장은 3개 대대에 5대기조를 보내야 할 때도 하모 병장과 이모 상병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윤 일병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가장 말단 계급인 윤 일병이 해야 할 일인데도 왜 그랬을까요? 이모 병장은 식사를 못하게 하는 등 계속 괴롭히려는 것도 있었지만 윤 일병이 폭행당하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체하는 게 뭔지 알려주겠다며 냉동식품을 강제로 입에 넣으며 폭행을 했습니다.
천식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 김모 일병은 잠시 잠이 들었다가 폭행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16:00 좀 넘어서 잠을 깼습니다. 잠에서 깬 김모 일병의 눈에 맨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이모 병장이  냉동식품을 윤 일병 입에 강제로 집어넣으면서 가슴을 폭행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모 병장이 가슴을 치니까 음식물이 밖으로 튀어 나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가해자 이모 상병의 진술을 들어보면, 이모 병장은 “먹어, 먹어, 계속 먹어, 먹다가 체하는 게 뭔지 알려 주겠다”며 윤 일병을 위협했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16:00경 수액을 맞느라 누워있던 윤 일병을 깨운 후 이모 병장은 냉동식품을 빨리 먹으라고 채근했습니다. 이모 병장은 자신도 먹는 틈틈이 윤 일병을 폭행했습니다. 쩝쩝댄다고 왕만두 하나를 집어 들고 윤 일병에게 집어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윤 일병 입에 음식물을 강제로 집어넣고 대답을 빨리 못한다며 폭행했습니다. 폭행으로 입안에 가득 찼던 음식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이모 병장은 음식물을 주워 먹게 하고, 그 과정에서 행동이 굼뜨다며 또 다시 폭행했습니다. 그 이후로 윤 일병은 음식물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작 윤 일병이 음식물을 먹은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핥고 난 후 “행동이 더 느려지고 눈빛이 희미해지고 축 늘어진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윤 일병이 지속된 폭행으로 대답을 잘 못하자 이모 상병은 윤 일병의 정수리를 크게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폭행했습니다. 윤 일병은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자 이모 병장이 지모 상병에게 “야, 때리기 힘드니까  지00 네가 때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에 지모 상병은 윤 일병을 침상 밑으로 내려가게 한 후 엎드려뻗쳐 시키고 10~20대 가량 폭행했습니다. 이후 가해자들은 가혹행위를 할 때마다 질문을 하고 3대를 폭행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윤 일병은 눈에 띌 정도로 가쁘게 숨을 쉬면서 ‘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모 병장은 도저히 물마시고 올 수 없는 시간을 주며 시간 안에 못 마시고 왔다고 폭행하고, 다시 시간 안에 물마시고 오라고 하고 또 다시 폭행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이모 병장의 말에 의하면 물을 마실 시간을 1분으로 주었다고 하지만 3초 정도 주었다는 김모 일병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활관 안의 그 짧은 거리를 1분을 주면서 못 갔다 왔다고 폭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윤 일병이 소변을 보며 쓰러졌는데도 더럽다며 끌어내려 폭행을 계속했습니다.
도저히 물마시고 올 수 없는 시간을 주며 시간 안에 마시고 오라는 일명 뺑뺑이를 돌다가 윤 일병은 갑자기 양반다리를 하며 ‘지모 상병님, 오줌’하면서 기운 빠진 듯이 축 늘어져서 침상에 주저앉았습니다. 그 이후로 윤 일병은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습니다. 이걸 본 이모 병장은 “미친 척 하는 거다, 오줌이 있으니까 더러우니까 ‘걔 끌어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모 상병은 윤 일병을 침상에서 끌어내려 바닥에 질질 끈 후에 다리는 바닥에 상반신은 침상에 걸쳐놓았습니다. 그리고 확인해 본다는 차원에서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들고 와서 측정을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맥박이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이다’라고 하면서 “눈을 감고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의 윤 일병을 계속 폭행했습니다.


당시 윤 일병의 눈이 조금은 감기고 조금은 뜨였는데 눈동자가 돌아가서 흰자가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모 병장은 윤 일병의 배 위에 올라가서 발로 밟았고 주먹으로 가슴을 “엄청 세게” 폭행했습니다. 이모 상병도 폭행에 가담했습니다. 폭행을 하던 중에 가해자들은 얘가 이상하다,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니다 정상이다 물을 먹여보자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이후 1.5L 페트병의 물을 그대로 윤 일병 입에 부어 넣었는데 먹지 못해서 물은 아래로 맥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제서야 다시 산소포화도를 측정했지만 이미 맥박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하모 병장이 흉부압박을 하는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힘이 부족해서 못하자 지모 상병이 심폐소생술을 거들다가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삽관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으로 쓰러졌을 당시 윤 일병은 캑캑 거리거나 목을 잡는 등의 질식을 하면 나타나는 제스처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가해자들의 진술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의무병인 가해자들 또한 질식이 발생했을 경우 일차적 처치법인 하임리히법은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가해자들도 윤 일병이 질식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윤 일병과 관련되어 밝혀지지 않은 문제점이 많습니다. 김모 일병에 따르면, 이모 병장은 평소에도 “심부름센터 같은 데에 돈 몇 억 주고 사람 몰래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아버지가 이전에 영남 근방에서 굉장히 잘 나가던 조폭이고 자기(아버지) 밑에 대신 살인죄로 들어간 부하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조폭인 것을 사실적이고도 과장해서 얘기를 해 주변의 병사들을 장악했던 것입니다.


업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이모 일병에 대한 폭행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윤 일병이 업무를 수행하기 전 2주 대기동안 이모 병장은 이모 일병을 폭행하고 약과 치약을 먹이며 물고문을 하는 모습을 윤 일병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모 일병에 대한 폭행을 목격한  윤 일병은 심리적으로 억압되고 압도당해서 폭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저항할 의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는 2주 대기가 끝나고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나 GP로 가고 싶어“라고 말한 것에서도 확인됩니다. 3월 28일 가족초청 체육대회가 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윤 일병 어머니가 체육대회를 며칠 앞두고 부대로 전화해서 윤 일병과 통화를 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윤 일병은 ‘엄마, 여기는 특수한 경우만 하는 전화야“라고 하면서 어머니의 전화를 급하게 끊었습니다. 그날 밤 9시경 집으로 전화해서 마일리지가 부족해 가족초청 체육대회는 못 온다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4월 5일에는 면회 가겠다고 했지만 윤 일병은 4월에는 면회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윤 일병 어머니가 전화한 곳은 자대배치 당시 대대장이 연락할 일 있으면 전화하라며 알려준 번호였고, 실제로도 많은 부모들이 이용하는 전화입니다. 그런데 윤 일병은 왜 겁에 질렸던 걸까요? 김모 일병의 말에 따르면, 윤 일병 어머니가 대대장에게 전화한 것을 두고, 이모 병장이 ”부모님이 바로 부대로 간부한테 직접적으로 통화하는 건 안 좋은 거다. 너 한테도 안 좋은 거다“며 윤 일병을 위협했습니다.


윤 일병은 “처음에 왔을 때에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활발하고 나서려고 하는데, 점점 가혹행위가 심해지니까, 가혹행위를 하면서도 왜 이렇게 나서서 하려고 하나, 나대냐, 그런 명목에 때렸거든요. 그러니까 점점 주눅이 들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더 가혹행위가 심해”졌다고 김모 일병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윤 일병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가해자들은 일과시간에 1~2시간 재웠다고 합니다. 간부들도 의무대에 오는데 윤 일병이 다리도 절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안 되니까 남들 시선을 피하려고 재웠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간부들이 10여 명 의무대를 방문해서 약을 타러 오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윤 일병의 폭행사실을 몰랐습니다. 특히 3월 8~9일 경에는 대대장이 의무대에 왔었지만 윤 일병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을 관리감독하며 보호해야할 간부들이 정작 병사들에게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부가 입실해 있을 때는 의무대 창고에서 윤 일병을 폭행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인 가해자들이 오히려 소심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28사단의 군 인권 상황은 전반적으로 심각합니다.
김모 일병에 따르면, 28사단은 “소원수리나 마음의 편지를 하면 못 내려가게 하고, 못 쓰게 하고, 쓰더라도 선임들 있는 곳에서 쓰게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윤 일병이 자신을 방어할 수단이 전혀 없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28사단의 몰인권적인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헌병대 조사 당시 김모 일병은 가해자들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김모 일병은 당시 수사실을 “소리 정도는 귀 기울여서 들으면, 그때 옆에서 울고 있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라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조사를 받으러 들고나는 과정에서 가해자 이모 병장, 이모 상병과 마주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증인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보호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가족들과 접촉하려고 한 김모 일병의 용기가 놀라울 뿐입니다. 나아가 김모 일병에 따르면 사망사건 당일에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입실해 있어서 폭행 정황을 잘 알고 있는 김모 일병(A)과 강모 일병도 있었지만 조사가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28사단 헌병대 초동수사부터 군단과 검찰부 수사까지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 졌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언론과 네티즌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건 당일 김모 일병은, 하마터면 냉동식품을 먹다가 질식한 것으로 왜곡될 뻔한 윤 일병 사건의 진실을 김모 상병과 함께 용기 내어 알린 병사입니다. 가장 유력한 증인인 김모 일병이 유가족과 만나서 증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모 일병을 세상과 차단시킨 것은 바로 군 당국입니다. 따라서 용기 있는 젊은이가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악플과 언론의 과다한 취재 경쟁으로 고통 받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결단을 한 병사들을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지켜주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더 이상 또 다른 윤 일병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3. 우리의 요구


- 군 당국은 더 이상의 은폐와 조작을 즉각 멈추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 국방부는 3군사령부의 수사를 즉각 중단하게 하고 3군사령부에 대한 조사와 직무감찰을 즉각 실시해야 합니다.
- 공정한 재판의 진행을 위해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재판관할을 이전하고 수사권을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전해야 합니다.
- 28사단 검찰관 최승호, 28사단 헌병대장 이상렬, 28사단 전 사단장 이순광, 6군단 헌병대장 문병규, 6군단 수사팀장 오성탁, 6군단 수사과장 김대부, 이순광, 6군단장 이범수, 3군사령부 전사령관 권혁순에 대해 즉각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 진실의 목소리를 낸 용기 있는 김모 일병에 대한 악플과 촬영 경쟁을 그만두고, 신변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2014년 8월 27일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진실이 왜곡되고, 또 그것을 덮으려는 모습이 사건이 벌어지고 결과가 나와도 아직까지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정부와 군에서는 조속히 사건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진실적인 모습으로 진행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오늘도 군대는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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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82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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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크하우스 2014.09.14 0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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